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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이민

호주 이민- 난생 처음 저녁이 있는 삶을 맞이하다

Merewether Ocean Baths

 

한국에서 15년을 같은 직장에서 일을 했던 나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것은 유니콘 같은 거였다.

있긴 있지만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내가 일하는 직군이 hospitality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쉬는 국경일, 공휴일, 주말 즉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는 나에게 일로서 가장 바쁜 날이었다. 15년을 그렇게 일을 했더니 결국에는 주말에 쉬는 것이 어색해져 버렸다.


나보다 프라이스라인 약국에서 2년 정도 먼저 일을 하고 있던 언니는 10년 전에 시누이가 먼저 정착한 호주에 남편과 두 아이들을 데리고 호주로 왔고 지금은 시어머니와 호주에서 살고 있어서 남편의 가족은 모조리 호주에,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

호주 직원들과 일을 해본 경험은 있지만 그때는 매니저로서 일을 한 것이었고, 프라이스라인은 part timer로서 join을 한 거라 일반 직원들과 잘 지내야 하는 게 직장 생활을 편하게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약이라면 타이레놀, 후시딘, 마데카솔, 신신파스밖에 모르던 나에게 빠르게 한국말로 브리핑을 해줘서 약국에서 일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빨리 적응을 할 수 있게 도와줬고, 30명이나 되는 직원들의 배경과 특징을 알려줘서 직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도와줬다.

 

성격도 너무 시원시원하고, 비타민과 영양제 공부해서 지식도 풍부하고, 약국이 손님 중 80%가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 단골손님에게 인기 만점인 이 언니는 스토어 매니저와 약국 사장님께 큰 신임을 얻고 있었다.

나는 참 궁금했다.

나같이 남편이 호주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호주로 이민을 온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고

무슨 이유로 호주라는 나라로 결정하고

또 지금은 이민을 온 것이  과연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을 하는지를.

 

이 언니의 경우는 한국에 있을 때 30대의 젊은 나이에 종로에 돌잔치 뷔페로 큰 경제적 성공을 했었는데 부산에 두 번째 가게를 내는 계획 중 파트너로부터 사기를 당해 번 돈을 모두 잃고, 죽을 결심 끝에 이민을 결정했다고 한다.

호주를 선택한 건 아이들의 교육과 자연환경이 가장 결정적 이유였지만, 아무래도 먼저 시누이가 호주에 정착을 하고 있었기도 하고, 동생 부부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시누이가 끌어 준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였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민을 온 것이 잘한 결정이라고 확신을 한다고 했다.

호주에서 가장 좋은 점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버는 만큼 스트레스가 컸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나 또한 한국에서 호텔리어로 15년을 일하면서 수많은 회식과 노래방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족은 항상 뒷전이었다.


호주 사람들은 가족이 항상 피라미드의 맨 위쪽에 있다.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

최근에 어느 리포트에서 보니 한국 사람들에게는 가족을 여유롭게 살게 할 수 있는 돈, 직장이 피라미드의 맨 위쪽에 있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100% 이해할 만한 일이나,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한 결과이다.

가장 소중한 가족이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이 결과를 만든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일할 때도 결혼을 한 직장 동료들이 저녁을 포기하고 주말을 포기하고 일을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상황이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저녁이 있는 삶. 나도 남편도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다르지만 집에 오는 시간은 비슷하다.

일이 끝나기 전에 서로 저녁 메뉴를 서로 의논하고 일이 먼저 끝나는 사람이 슈퍼마켓에 들러서 식재료를 사 와서 요리를 시작한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요리를 하지 않은 사람이 설거지를 한다. 

처음에는 저녁이 있는 삶이 어색해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왠지 내가 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과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거나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편히 쉴 수가 없는..

지금은 적응을 하여, 저녁을 먹고는 나는 집 앞의 호수 근처로 운동을 나간다.

걸으면서 유튜브를 듣고 아니면 지인과 통화를 한다.

남편은 넷플릭스를 시청하거나 밀렸던 일을 한다. 


요새는 역이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많이 본다. 한국이 예전처럼 살기 어려운 나라도 아니고,

영어라는 언어가 개인의 실력에 변별력이 큰 것도 아니고,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란다.

부모님은 손자 손녀가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자식들은 부모님의 지척에서 아프거나 돌아가실 때 옆을 지킬 수 있고, 손자 손녀들은 조부모와의 관계를 통해서 가족이라는 정을 느낄 수 있으니 이민을 하는 것보다 인생에서 실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옛날처럼 자식이 4-6명이 돼서 여기저기 살아도 외롭지 않은 시대를 지나 이제는 외동자식이 많으니 가족의 역할과 의미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된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만약 외동자식이었다면 나는 절대로 한국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도 저녁이 있는 삶으로 사회 시스템이 바뀔 수 있을까?

내 부모님 대에도 없었고, 내가 직장 생활을 하던 15년 동안도 없었고, 내가 한국을 떠난 지 10년이 된 지금에도 없는 그 시대가 과연 올까?